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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과 나 그리고 현대사회
  현대사회의 자아상실의 병증은 정신과 신체에 심각한 위험수위에 이르렀다. 
  인류의 목표와 방향을 상실한 맹목적인 질주가 타성에 젖어 인간부재의 도를 넘어
급속도로 나락으로 몰아가고 있다.
  참 나를 외면한 맹목적 타성의 연장선상에서 정신과 신체 자연환경 사회전반으로 
현대사회에 중증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인류존망의 기로에 와 있다.
  자아를 상실하여 그 결과로 나타나는 증상은, 모든 생물의 본능인 존립욕구는 상대
적으로 강하고 비대해지면서, 개인과 단체 국가에 이르기까지 팽창일방주의에 함몰되
거나 과대망상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루어지기 어려운 요구와 원하는 데로 이루어지
지 않을 때는 더욱 난폭하고 잔인하여, 개인적으로는 사회성결여와 대인관계에서 가
누기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된다.
  현대사회에서 누구나 한 두 번씩 겪은 바 있는, 정서불안 기억력상실 우울증 신경
쇠약 공포불안 집중력저하 스트레스 등 장애로 나타나 사회생활을 하기 어렵게 되고, 
가정파탄이나 자살률이 높아지고 사회불안 갈등고조 투쟁과 전쟁광으로 이어져서 평
화붕괴와 인류파멸을 자초하게 된다.
  참선은 인간의 근원적인 본성인 참 나의 회복이며 실현이다. 
  최근 자신을 찾자는 각성의 물결이 산업을 일으킨 구미사회로부터 일기 시작하여 
전 세계에 퍼져가고 있다.
  참 나의 실현으로 맹목적인 타성의 물줄기를 바꾸지 않는 한, 물질주의의 집착은 
물질신앙으로 자리 잡아 인류의 혼을 송두리째 물질의 틀 안에 가두어두고 그 물질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참선과 명상 정신함양에 대한 관심은 삶의 목표를 상실하고 괘도를 벗어난 현대사회
의 어두운 그림자로부터 벗어나고자하는 몸부림이며 갈증해소의 요구이다. 
  참선을 통해 자성의 실현은 심신개선, 자신감, 신념증대, 창의성강화, 능률능력 확
장, 성격개조, 이해 통찰력증진, 불안해소, 자아의식강화, 심신유약극복, 문제해결능
력증강등으로 원만한 사회활동을 회복하게 되는 효과는 부수적으로 따른다.
  참선은 사회의 구성원인 개개인의 행복추구와 공생공영의 기틀을 마련하여 인류평화
의 튼튼한 기초를 마련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영약이다.
  온 몸이 단백질로 가득 채워질 때 새의 먹이가 되고야 마는 어느 애벌레 일생의 존
립욕구는 애벌레가 스스로를 위해 살고자한다. 그러나 애벌레는 자신을 통째 먹어 삼
키는 배고픈 새를 위한 거룩한 헌신이 아니다. 이 나무 저 가지를 전전긍긍하면서 먹
이 감을 찾아 목숨을 연명하여 영양분이 애벌레의 전신에 고루 퍼져서 숨을 돌릴만한 
여유를 누릴 만 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한 입에 새의 밥이 되고 만다. 밤낮을 살고자 
몸부림치며 한시도 맘 놓고 살아 본적이 없다.
  평생을 바쳐온 자신의 진지한 노력과 열정이 과연 무엇을 위함이었던가.
  심혈을 기우려 이루고자 하는 역점 사업이 궁극에 무엇으로 돌아가는지를 따지고 
접고 하는 심사숙고는 아니더라도 어렴풋이나마 관심을 가져보라.
  우리 인간 자신이 저 가엾은 애벌레와 얼마나 다르고 무엇이 다른지를 말해보라.
  살려고 몸부림치다보면 원한을 사기도하고 원수를 맺기도 하고 온갖 모욕과 질시를 
받기도하고 영욕을 감내해야하는 목숨을 유지해야하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자신과 아무 상관없이 이름도 성도 알 수 없는 새의 목숨 연장만을 위해 애벌레의 
헌신적 몸부림인가를 자문해보는 작은 관심이라도 가져 보아야할 것이다.
  맹목적인 자신의 삶이 얼마나 무모한 짓이며 무의미한가를 뼈저리게 성찰하지 않는
다면 거듭 타성에 젖어 그 연장선상에서 자신도 괴롭고 주변과 상관관계에 악영향을 
끼치며 살 것이다.

나를 찾는 깨달음, 참선!
(화두를 드는 이유)


  자신의 존재를 바로 보지 못하고 변화하는 순간적인 현상을 자신의 모습으로 착각
하여 집착에 갇혀 오직 살아남고자 허우적거리는 것은 진정한 자신의 삶을 사는 태도
가 아니다. 이는 암흑이며 무지며 방황이다. 무지와 방황을 벗어나, 생동감이 찬 본
래 자신으로 되돌려 놓고자하는 것이 수행정진의 진정한 뜻이다. 본래 나를 찾아서 
자신과 가족과 이웃을 바로보고 더불어 사는 길을 밝혀 사는 것이 참다운 삶이며 깨
달음이다.
  "본래 나는 무엇인가?"라고 하는 나를 찾는 일은, 무지 가운데 순간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자신으로 보고 사는 타성에 대한 회의(懷疑)이며  바른 성찰이다. 
  "본래 나는 무엇인가?"라고 하는 나를 찾는 일은,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길이며, 그 
자체가 각성인 것이다.
  이 각성이 바로 참선의 시작이며 참선 자체이기 때문에 참선이야 말로 방황을 접는 
길이 된다.

  순간순간 변화하는 자신의 첫 출발은 부모한테 생김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렇다면 "거듭 변화하는 자신"의 변화 이전은 "부모한테 생기기 전"이 "본래 나"인 
것이다.

  "본래 나는 무엇인가?"라고 하는 나를 찾는 일은 보다 확실히 하여 "부모한테 생기기 
전"  "본래 나는 무엇인가?"라고 할 때 분명해진다.
  이 내용을 붙여서 말한다면 "부모한테 생기기 전, 본래 나는 무엇인가?"가 된다. 
  이런 자신을 찾는 의문의 통찰은 "의심(疑心)"이라고 명명하면 분명해진다. 

  이것을 화두라고 하며 "무엇인가?"라는 의심하는 것을 "화두를 든다" "화두 한다" 
"화두 챙긴다"라고 말하며, 일념으로 이 의심을 꾸준히 하는 사람은 깨달을 수 있다.

  "부모한테 생기기 전 본래 나는 무엇인가?"를 짧게 하여 ""무엇인가?""라고 의심하
는 것은 "부모한테 생기기전 본래 나"를 나타내는 줄인 말이 된다.

  이 참선은 안목을 갖춘 스승의 지도를 받아서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다. 모르는 
길을 나서다 보면 아주 엉뚱한 갈림길에서 길을 놓칠 수 있다. 

  오로지 본래 자신을 외면한 채 존립에만 눈이 먼 생존의 몸부림이야말로 얼마나 부
질없는 짓인가를 청산해 가는 깨달음이 참선이다.

  화두(話頭-公案이라고도 함)를 드는 것 자체가 시름을 더는 길이며 무모한 방황을 
접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안심입명의 장도에 들어서는 깨달음의 일이다.

  이 화두 참선을 着話禪이라고 한다.